숲의 유적지                      이주연(밤부컬렉션 큐레이터)
“미지의 생명체들이 가만히 숨 쉬고 있다. 마치 시간이 정지된 듯한 느낌을 받으며 나와 숲은 서로를 바라본다. 신비로운 공간에 들어선 그 순간, ‘나는 누구였지?’라는 생각도 버려둔 채 숲의 유적지를 탐험한다. 내가 돌아갈 길이 보이지 않는다. 기억도 사라졌다. 나는 이 거대한 문명에 소화되었다.”  작가노트 중
덩굴식물은 생태계에서 늘 이중적인 존재다. 환삼덩굴, 가시박, 칡과 같은 종들은 짧은 계절 안에 폭발적으로 번성하며 주변을 완전히 덮지만, 이내 사그라든다. 여름의 무성함은 오래 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나무와 풀, 인공 구조물까지 감싸는 이 강력한 번식력은 숲의 질서를 뒤흔들고, 다른 생명들의 자리를 위협한다. 그러나 겨울이 오면 잎은 모두 사라지고, 남는 것은 앙상한 줄기와 뼈대뿐이다. 그 잔해는 계절이 바뀌어도 독특하게 남아있어, 한때의 번성을 증명하면서도 마치 문명의 폐허처럼 고요한 유적을 떠올리게 한다.
강해란의《숲의 유적지》는 바로 이 상반된 두 얼굴을 교차시킨다. 프린트된 사진은 한여름 덩굴의 과잉과 겨울의 정적을 동시에 보여주며, 숲을 살아 있는 동시에 무너진 공간으로 제시한다. 화면 속에는 덩굴의 힘찬 확장과 쇠락의 흔적이 나란히 놓이며, 관객을 생명과 소멸의 경계로 이끈다. 번성의 절정과 폐허의 순간이 교차하는 이 시공간에서, 우리는 숲을 더 이상 단일한 자연의 배경으로 바라볼 수 없다. 숲은 하나의 서사적 공간, 시간의 흔적을 품은 유적지로 재구성된다.
사진은 이러한 모순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여름의 장면은 화면을 가득 채운 초록빛과 덩굴의 집요한 확장이 만들어내는 압도적인 밀도를 보여준다. 나무와 구조물이 어디까지가 본래의 형체였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뒤엉킨 잎과 줄기는, 생명의 힘을 극적으로 시각화한다. 반대로 겨울의 장면에서는 잔해만이 남아, 기하학적 선율과 같은 줄기의 패턴,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추상적 구조가 부각된다. 
강해란은 이 두 시점을 병치하며, 자연의 생태적 리듬을 조형적 질감과 회화적 구조로 전환시킨다. 작가에게 사진은 생태적 사실의 기록을 넘어선다. 생태계 교란 식물이라는 이름을 부여받은 덩굴식물의 삶과 죽음은, 우리가 세계를 정의하고 기억하는 방식을 반영한다. 여름의 번성을 ‘자연의 힘’으로, 겨울의 잔해를 ‘폐허와 유적’으로 읽는 시선은 인간이 자연에 투사하는 가치와 의미를 드러낸다. 
우리는 무엇을 생명이라 부르고, 무엇을 소멸이라 규정하는가. 자연의 변화는 자체의 리듬에 따른 것이지만, 그것을 폐허와 유적지로 명명하는 것은 인간의 인식이며,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강해란의 사진은 이 질문을 고요히 제시한다. 번성과 소멸, 질서와 교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숲의 풍경을 통해, 우리는 존재와 부재의 경계에서 숲을 새롭게 경험하게 된다. 《숲의 유적지》는 그 낯선 경험을 우리 앞에 놓으며, 자연과 인간, 시간과 기억을 가로지르는 또 다른 감각의 문을 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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